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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5, 마녀사냥 어린이집 폭행사건이 뜨겁다. 그래도 어린아인데 세게 때리기야 했겠어, 꿀밤정도겠지 -물론 그것도 잘못됐지만-, 하며 나이브한 태도로 재생버튼을 눌렀던 것이 무안하게 영상은 경악스러웠다. 텅 빈 내 방이 헉, 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울렸던 건 보너스. 그 막돼먹은 가해자의 신상은 이미 털린지 오래고, 당사자의 남편 전화번호라는 허위글과 함께 자기 번호가 웹상에 공개된 어떤 사람은 밤새 300여통의 전화와 400통의 저주문자를 받아야했단다. 야단은 야단인가보다. 그런데 그 번호가 무고한 사람의 번호이 아니라 설령 진짜 그 당사자의 남편번호였다고 해도 옳은 행동이었을까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렇게하면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일까, 그 번호로 온갖 저주를 퍼부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하는 의문과 나.. 더보기
20150114, 안녕하세요, 지역교회에서 찬양인도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제대로 찬양을 "인도"한다고 했을때 내 나이는 스물 한 살이었다. 내가 맡았던, "청년연합예배"라고 불리던 찬양시간에는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의 청년들이 참석했다. 고작 대학교 2년다닌 청년부 뉴비가 인도하기에 그들은 노련했고, 숙련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깊이있지 못했고, 모난 성격에 까칠한 태도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던 차였다. 기껏 기타치면서 노래 부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내세울 만한 것의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청년부의 리더십은 그런 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해 내게 찬양인도를 시켰던 것 같다. (보통의 지역교회에서 찬양인도하는 사람을 깊이와 영적인 이유로 뽑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 노래하는 거 좋아한다 싶으면 시키는 게 대부분이지.) 하지만 나는 내가 그럴만한 가치 있다고 인정 .. 더보기
20150114,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주님, 짜장면 먹으면 좋겠습니까, 짬뽕 먹어야 하겠습니까?" 목사님들이 설교 도입부에 하는 농담들을 모아놓은 설교유머집 같은 곳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 말은, 사실 누군가의 실제 경험담이란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빚어낸 촌극이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 하나님이 매 순간마다 디렉션해주는 삶은 많은 크리스천들의 강력한 소망이니 이런 일도 벌어진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사실 굉장히 어렵고 껄끄러운 삶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삶에 개입하는 건 엄청 귀찮은 일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느낀다. 자기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걸 느끼면 “왜 자꾸 쳐다봐요?”하고 따지듯 묻거든. 그런데 성인이 되고나서도 다른 존재의 뜻에 삶 전체를 맞춘다는 것은 꽤 불편한 일.. 더보기
20150112, 갑질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 갑이 아닌 사람들이 스스로를 갑이라고 착각하고 갑질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을이 아닌데도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하고 갑을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더보기
20150112, 성경공부 = 잉여질? 잉여질 - '나머지'라는 뜻의 명사 '잉여'와 '좋지 않은 일을 하는 행위'를 뜻하는 접미사 '-질'이 결합해 만들어진 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몰두하는 행위'를 낮게 이르는 말이다 - 과 덕질 - 일본어 ぉ宅에서 온 말, 오타쿠를 한자로 음차한 '오덕'의 '덕'과 '-질'의 합성어.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행위를 뜻한다 - 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이다. 대입과 취직, 결혼 같이 보편적인 삶의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뺀 나머지 일들을 하는 것에 인색한 시대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 그 길에서 이탈하거나 역행하는 행위, 시류를 따르지 않는 모든 행위는 핀잔의 대상이 된다. 고3이 대입을 위해 독서실이나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것,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토익점수나 공모전으로 스펙을.. 더보기
「20150106, Advanced Healing(2009), 이대귀」 이 글은 1) 에 대한 개인적 감상, 2) 19회 나비공장 공장음악회에서 나눠진 이야기들, 3) 블로그 '영감으로 가득한 세상'의 글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일부라도 가사를 직접 인용한 부분은 큰 따옴표("")와 함께 글자색을 (앨범커버에 제일 많이 쓰인) 연두색으로 표시했습니다. 너 들어본 치유 무어냐, 그냥 한번 들어본 것인가 내가 어떻게 이대귀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되고, 이 앨범을 사서 듣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앨범이 CCM 앨범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제일 먼저 추천하는 앨범이 되었는지는, 처음 알게된 앨범이 나온지 5,6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러나 어쩌다 그랬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교회 안의 일에나 천착하던 내가 로널드사이더나 짐 월리스의.. 더보기
20150106, 시온의 대로는 어디 있는 도로래?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그들이 눈물 골짜리고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시편 84편 5-6절, 개역개정) 오늘 부흥회 본문. 강사님은 이 본문을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에게 시온의 대로가 열린다"고 해석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시온의 대로는 가정의 축복이나 자녀의 축복을 의미한단다. 그런데 본문만 살펴봐도 뭔가 맥락이 이상한 게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에게" 복이 있는 것이지 "복 받는 자에게 시온의 대로가 열리는 게“ 아니란 말씀. 더군다나 시온의 대로가 열린다는 표현은 성경 - 적어도 이 본문에는 없다. 그런데도 시온의 대로가 열린다고 단정지어서 얘기하는 게 옳은 건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많이 들어.. 더보기
20150105, 쓰임받는 것과 족쇄를 쓰는 것 1. 구글에 "쓰임받는"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본다. 몇페이지가 넘어가도록 나오는 검색결과들은 전부 개신교 관련 글 - 그것도 대부분은 설교문 - 이다. 네이버로 검색엔진을 바꿔서 검색해본다. 그래도 여전히 "쓰임받는"이라는 검색어에 잡히는 모든 글들은 전부 개신교 글이다. 영어로 하면 "be used", 즉 "사용되는", "쓰이는" 정도로 번역되는 이 단어를 굳이 교회방언화 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쓰임받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같은 이기적인 믿음이 떠올라 영 불쾌하다. 정말 도구로 사용되는, 청지기같은 삶을 추구한다면 굳이 쓰임"받"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내려놓음", "부르심" 같이 뭐든지 명사형으로 바꾸는 방언이 교회의 게토화를 가속화하는 것을 이제 다들 알 때가 되지 않았을까.. 더보기
20150104, A Whole New World, Brad Kane & Lea Salonga 겨울왕국을 보며 격세지감(혹은 기시감)을 느끼다. 2014년에 나온 노래 중 가장 인기있는 곡을 꼽으라면 사람마다 기준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불렸던 노래를 꼽으라면 답은 정해져 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 근처에서 "레리꼬~ 레리꼬~ (얼버무리며) 나나나나 나나나~"하는 초딩들의 흥겨운 떼창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의 파급력이 굉장했던 2014년, 하교시간에 맞춰 초등학교 앞을 몇번 지나가다 슬쩍 보면 항상 레리꼬~ 하면서 교문 앞을 배회하는 여자애들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교회 유초등부에 기타칠 일이 있어서 참석했다가 쉬는시간 시간죽이기 용으로 코드만 뚱땅거렸는데, 애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레리꼬를 열창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 더보기
20141230, 한 새 사람 - 모든 민족과 방언들 가운데, 어노인팅 고유명사 [5집] 누군가가 내게 예배실황앨범 딱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않고 이 앨범을 꼽겠다. 어노인팅 5집에 특별한 음악적 가치나 예배예술의 역사적 의의가 월등히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내가 음악을 매개로 한 본격적 예배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 것이 절대적으로 이 앨범의 영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전에는 교회음악에 관심이 없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성가대는 유초등부때부터 했고, 찬양팀도 몇년 했었다. 다만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내가 인식하는 교회 음악들은 '준비찬양'에 가까운 것이었고 기도나 예배할 때 쓰이는 브금 정도였을 뿐. '찬양은 말씀을 듣기 전에 마음을 열도록 하는 것'이라는 뭔가 미심쩍은 목적이 거스를 수 없는 도그마였던 내게 '음악을 도구로 스스로의 예배를 표출하는 것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