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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까지는 못 되는 감상/음악_ 한 번에 한 곡씩

20150104, A Whole New World, Brad Kane & Lea Salonga





겨울왕국을 보며 격세지감(혹은 기시감)을 느끼다.

     2014년에 나온 노래 중 가장 인기있는 곡을 꼽으라면 사람마다 기준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불렸던 노래를 꼽으라면 답은 정해져 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 근처에서 "레리꼬~ 레리꼬~ (얼버무리며) 나나나나 나나나~"하는 초딩들의 흥겨운 떼창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겨울왕국>의 파급력이 굉장했던 2014년, 하교시간에 맞춰 초등학교 앞을 몇번 지나가다 슬쩍 보면 항상 레리꼬~ 하면서 교문 앞을 배회하는 여자애들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교회 유초등부에 기타칠 일이 있어서 참석했다가 쉬는시간 시간죽이기 용으로 코드만 뚱땅거렸는데, 애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레리꼬를 열창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도 있고.




레리꼬~ 레리꼬~♬



     21세기 들어서 3D쪽으로 넘어간 애니메이션 시장의 패권을 픽사와 드림웍스에 빼앗기고 죽쑤고 있던 디즈니가 <겨울왕국>으로 주도권을 상당부분 다시 찾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경영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디즈니의 부흥기를 생각나게 하는 음악적 요소의 회복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 뒤쳐진 3D 기술을 따라잡느라 그랬나, 음악에 기반을 둔 극의 전개가 허물어지고 조금 딱딱하게 변해서 많은 팬들을 실망하게 변했던 디즈니가 <라푼젤>을 통해 유턴하고, 이제야 원점으로 간신히 회귀한 느낌이다. 그 원점은 지금부터 말하려는 바로 이 지점이다.



90년대 겨울왕국, 알라딘

     80년대생들이 대개 그러하겠지만 나는 VHS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컸다. 영화관에 가는 것이 몇년에 한번 있을까 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던 90년대 유년시절, 내 추억의 대부분은 비디오대여점에서 빌려온 것들이었다. 아마 지금 뮤지컬이나 음악영화들에 대한 꽤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때 몇번이고 되돌려 봤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내 덕후기질의 인큐베이터.


     유년기의 나에게는 바로 <알라딘>이 <겨울왕국>이었다. 아직까지 지니가 "왕자님 멋있어라~ 알리아부아봐~"하면서 알라딘을 소개하던 노래가사들이 기억에 또렷이 남거든. 이때 나는 자막보다 더빙판을 선호했는데, 음절을 무시한 번역 가사보다 음절도 꼭꼭 맞는 더빙판이 귀에 더 오래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어는 못알아듣고 따라부르기도 쉽지 않아서였지, 뭘. 나중에 원판을 다시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국어 버전의 더빙 수준은 원작을 거의 복사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완벽했으니 그토록 몰입하는 것이 가능했겠다. 특히 지니 역을 맡았던 김명곤 씨 - 가카를 닮은 그분, <명량>의 왜군대장 도도 타카도라 扮 -  의 열연은 지금 봐도 압권.




지니의 이런 깨방정(시대파괴, 설정파괴) 좋았다.



     원작이든 더빙이든 지니가 진주인공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무게감이 컸기 때문에 정작 주제가 격인 'A Whole New World'는 뒷전이었지만, 양탄자로 구름을 휘감아 올라 아이스크림 모양을 만드는 장면 - 모든 교회학교의 공적이었던 TV프로그램 <디즈니 만화동산>의 인서트 샷으로 쓰여서 더 익숙한 그 장면- 이라든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중국의 자금성 불꽃놀이씬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Now I'm in a whole new world with you"



     원판의 'A Whole New World'는 싱글버전과 인서트 버전이 있는데, 싱글버전은 당시의 R&B 트렌드 - 마림바 같은 EP + 넓게 퍼지듯 울리는 스네어 + 간주에는 오버드라이브 잔뜩 걸린 일렉기타 솔로 - 를 충실하게 반영한 스타일이다.

     흑횽과 흑누나의 소울풀한 목소리는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나는 극중 진행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인서트 버전을 더 좋아한다. 철이 덜 든 듯한 알라딘의 미성과 풍부함 감정의 자스민 공주 - 레아 살롱가(당시 스물 한 살). <뮬란>의 'Reflection'을 부른 그분, <레미즈>의 에포닌, 팡틴으로도 활약했던 그분! - 의 보컬이 굉장히 사랑스러운데, "어때즐링플레이싸이네버뉴 A dazzling place I never knew"하는 부분은 너무 좋다, 진짜 dazzling한 기분이 그 짧은 소절에 꽉차게 잘 표현된 느낌이다.

     자스민이 한참을 놀라며 즐거워 하는 1절의 끝과 바로 물려서 2절로 넘어가는 그 짧은 두 마디를 가만 안놔두고 알라딘이 'Now I'm in a whole new world with you'하며 꼼꼼하게 채우는데, 전조를 위해서 끼워넣은 것이 분명한 이 짧은 멜로디가 위에서 언급한 아이스크림 구름 컷과 겹쳐지면서 이미 공중으로 붕 떠버린 노래를 한껏 고조시키고 verse에서 후렴으로 넘어갈 때마다 한박 한박을 섬세하게 쪼개며 채우는 스트링과 플룻의 테크닉은 두 사람의 품에 안기는 구름만큼이나 황홀하다.



추억이 팔렸슴다..--;

     <국제시장>이 흥행몰이를 하고, 콘서트7080이 꾸준한 장수를 이어가는 것도, <무한도전 - 토요일토요일은 가수다> 특집 후기가 페이스북 뉴스피드와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을 장악하는 것도 어린시절을 가득 채웠던 추억에 대한 인간의 귀소본능, 향수 같은 것 때문은 아닐는지. 10대의 기억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없나?) 유년시절의 기억이 평생을 걸쳐서 되새김질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내 유년시절을 수놓았던 노래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알라딘이 생각나서 괜히 포스팅으로 90년대에 대한 헌사를, 흠흠.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으니, 비디오클립 첨부로.




피버 브라이슨과 레지나 벨의 싱글버전




브래드 케인과 레아 살롱가의 인서트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