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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생각해봤어/2015 그냥 한 생각

20150114,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주님, 짜장면 먹으면 좋겠습니까, 짬뽕 먹어야 하겠습니까?"


     목사님들이 설교 도입부에 하는 농담들을 모아놓은 설교유머집 같은 곳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 말은, 사실 누군가의 실제 경험담이란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빚어낸 촌극이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 하나님이 매 순간마다 디렉션해주는 삶은 많은 크리스천들의 강력한 소망이니 이런 일도 벌어진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사실 굉장히 어렵고 껄끄러운 삶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삶에 개입하는 건 엄청 귀찮은 일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느낀다. 자기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걸 느끼면 “왜 자꾸 쳐다봐요?”하고 따지듯 묻거든. 그런데 성인이 되고나서도 다른 존재의 뜻에 삶 전체를 맞춘다는 것은 꽤 불편한 일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삶의 각론에서 그 삶을 어떻게 살아야 살 수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매 순간 그 동행한다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뜻을 알 수 있는 채널이 사람마다 너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 뜻을 구할 때 직통계시를 믿는 사람, 주의 종이 하시는 말씀이 곧 하나님 말씀의 대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기도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면 그게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니면 성경에 나온 것만을 믿는 사람... 성경에 나온 것도 시대배경을 고려해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일점일획도 틀린 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 뜻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성경에 나온 예수의 삶이나 역사적인 신앙인들의 삶을 돌아보려고 시도해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예수는 말 안 듣는 애들을 억지로 앉혀놓고 가르쳐야하는 주일학교 교사를 한 적도 없고, 성가대도, 주방봉사도 해 본 적이 없거든. 취직하려고 스펙을 쌓아야 하는 사회에 살지 않았고, 매일같이 야근해야 하는 삶도 경험하지 않았다. 인륜지대사라는 결혼도 해보지 않았다. (혹자는 가나의 혼인잔치가 예수의 결혼잔치라고 얘기하기도 하나, 그것은 논외) 칼뱅은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철야를 다 참석했었나? 루터는, 쯔빙글리는 아파트 경비원들이 분신하고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나? 신앙생활이라 불리는 그 어떤 행위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하는 어떤 사람들도 우리에게 직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모범이나 교범 같은 것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네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이 추상적 구호나 수사, 아니면 막연한 감정의 표현으로밖에 기능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게 바로 “너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니?”라는 질문에 바로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내가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결국은 해석의 문제다. 객관적 사실이 아닌 해석에는 해석하는 사람의 주관과 양심, 배경지식 같은 것들이 반영된다.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성향, 주관과 양심을 가지고 있다. 즉,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이란 그다지 선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과 자신의 신념을 과신하지 않고, 매번, 모든 순간 ‘이게 하나님의 뜻인가?’하며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제일 가까운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