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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생각해봤어/2015 그냥 한 생각

20150112, 성경공부 = 잉여질?




     잉여질 - '나머지'라는 뜻의 명사 '잉여'와 '좋지 않은 일을 하는 행위'를 뜻하는 접미사 '-질'이 결합해 만들어진 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몰두하는 행위'를 낮게 이르는 말이다 - 과 덕질 - 일본어 ぉ宅에서 온 말, 오타쿠를 한자로 음차한 '오덕'의 '덕'과 '-질'의 합성어.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행위를 뜻한다 - 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이다. 대입과 취직, 결혼 같이 보편적인 삶의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뺀 나머지 일들을 하는 것에 인색한 시대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 그 길에서 이탈하거나 역행하는 행위, 시류를 따르지 않는 모든 행위는 핀잔의 대상이 된다. 3이 대입을 위해 독서실이나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것,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토익점수나 공모전으로 스펙을 쌓는 것, 결혼적령기(;;;;)의 젊은이가 선을 보고 결혼 상대를 찾는 행위 같이 보편적인 길은 필수가 되며, 그것 이외의 모든 것은 잉여질이 된다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에 몰입하는 사람을 그 자체만으로 '게임폐인'이라고 부르고, 연예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팬질이나 한다며 비웃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베개를 끌어안고 사는 오타쿠는 다수의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한심한 놈으로 낙인찍힌다. (안녕하세요 같은 오지랖 방송이 득세하는 이유다.)

 

    그 정상적인(?) 삶의 양태에서 "공부"라는 것은 항상 보편적 루틴의 필수조건으로 존재한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공부해야하고, 취직하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 학위를 따고 싶을 때에도 공부를 해야 하며,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도 공부해야한다. 사실 우리네 공부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수단적 용도에 한정되어 있다. 자격증 시험, 대입시험, 영어시험, 취직면접... 공부라기보다는 시험 준비에 가까운 것들만 겪다보니 시험도 없이 그 본질을 탐구하고 해석하는 식의 집요함은, (고도의 학문적 영역을 제외한 부분에선) 잉여질로 전락한다. 정작 자신이 알아보고 싶은 것에 대해 몰두하는 사람들은 "뭘 그렇게까지 파고 들어가? 그거 시험에 안나와" 같은 핀잔을 듣는다. 그렇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시험을 보고나서 그걸 기억하고 있느냐, 아니다, 시험 보고나서도 기억하는 건 불필요한 짓 아닌가.




 

    그것은 성경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다. 성경공부에는 시험이 없다. 신학교 입시 시험을 볼 사람이 아니면 성경에 관해서 시험 볼 일은 없다. 달달 외우고 정답을 체크하고 할 성경시험이라곤 교회에서 1년에 한 번 하는, 그것도 상당부분 레크레이션처럼 변해버린 성경퀴즈대회 같은 것이 고작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면 불필요한 잉여덕질로 보는 우리네 풍토에서 시험도 보지 않는 성경공부는 사실 잉여질이다. 원어나 여러 번역본을 찾아보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캐서 보는 것은, 사역자가 아닌 다음에야 안 해도 되는 짓처럼 여겨진다.

 

    파고드는 행위 자체가 잉여질로 여겨지는 이상, 시험보지 않는 성경공부는 의미 없는 것이다. 시험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성경은 옵션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데, 그 지점에서 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시험을 안 봐도 당장 써먹을 적용거리를 찾는 인스턴트 해석을 통해 성경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내 거기에 천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가 겪었던 격변의 시대에 대한 맥락과 요나서의 텍스트가 삽입된 맥락 따위는 거세되고 '나는 요나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 안 해서 하나님이 나를 바다에 빠트리시는 것이다' 같은 개인적이고 편협한 해석만이 본래의 컨텍스트를 대체한다. 전체 구속사적인 해석이나 통시적 해석을 할 여지가 없다. 왜냐면 그렇게까지 볼 필요가 없거든, 시험에 안 나오니까. 이때부터 성경은 내 삶에 적용할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되기 시작하며, 쓸모 없는 것은 버려진다.

 

    성경의 원어를 찾아보는 것이, 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면서 읽는 것이 정말로 불필요한 것인가. 이것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파악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의미 없는 짓인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어떤 방법으로 계시하시는가. 아주 오래 전 어느 부흥집회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외침 속에서 들었던 것 같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생각을 통해 계시하시는가, 크게 울리는 음악들 속에서 느껴졌던 감정의 폭발 같은 것을 통해 계시하시는가. 아니면 적당히 친한 사람들 속에서 같이 밤새 일하고, “선교여행같은 것을 하면 계시하시는가. 아니면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것을 공부하는 우리의 잉여질을 통해 계시하시는가. 정답은 꽤 자명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