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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까지는 못 되는 감상/기독교음악_ 앨범

「20130829, 어노인팅, 예배캠프2013 LIVE」






● 마침내, 궤도에 올랐다

     어노인팅 정규앨범(이하 정류앨범)과 예배인도자 컨퍼런스(이하 컨퍼런스)라는 두 개의 기둥 사이에 간신히 껴있는, 하나의 소품 같았던 예배캠프 앨범이 시리즈 두 번째 앨범을 가지고 재등장했다. 새로운 프로젝트임에도 <Vol.1>이 붙어있는 덕에 시리즈임을 알 수 있었던 <예배자의 노래>, <어노인팅 베스트 셀렉션>[각주:1]는 달리 <예배캠프> 프로젝트는 캠프 자체가 소그룹 강의 위주의 캠프실황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앨범이 나올지도 불확실해 보였다.[각주:2]


      <예배캠프2012> 자켓만 보더라도 세로로 길게 빠져 유려한 정규앨범의 자켓이나 해를 거듭하면서 거의 완성에 가까운 디자인을 구축한 <예배인도자 컨퍼런스>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정체성이 보이지 않는, '보통의 힐송류 스타일의 워십앨범 자켓'[각주:3]과 다름 없었기 때문에 이런 불안은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앨범 리뷰를 쓰면서도 다음 앨범이 나올지 안나올지 모르겠다고 한 이유도 비슷한데, 하지만 불투명한 짐작을 뒤로 한 채,  앨범은 발매돼 시리즈는 이어지게 됐고, 순항중(인 것처럼 보이고 있는 중)이다.




● 잘 만들어진 공산품

      예배캠프2012 이후의 인도자들은 팀내에서 같은 교육과정으로 교육을 받은 인도자들이다. 그 때문인지, 리딩하는 스타일의 큰 차이점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어노인팅 스타일. <예배캠프2012> 리뷰에서 어노인팅의 음악적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한 바가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범 앨범은 어느정도 균일한 스타일이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이 지점이 장점으로 작용할지는 의문스럽다.


      그동안의 정규앨범과 컨퍼런스 앨범에서는 그 예배를 인도했던 인도자들이 팀 안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라 팀이 생길때부터 시작했던 리더나, 보통의 CCM계에서 사역하다가 워십앨범쪽으로 참여했던 외부인사들이었다. 그래서 인도자마다 인도하는 스타일이나 음악적 색채에 차별성이 있어서, 골라듣는 재미가 있었는데, 예배의 무게가 인도자에 의해서 휘둘리는 것은 좋지 않은 태도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음악이 담긴 앨범으로서의 가치를 봤을 때 어노인팅 앨범에 참여하는 인도자의 개성에 초점을 맞춰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각주:4] 


      그런 부분에서는 각 인도자들의 개성이 앨범에 더 녹아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의 앨범에서, 전작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하나님을 예배함을 통해 발견하는 희락'(박철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교회된 예배자'(강명식), '레위인의 자세로 노래하는 거룩한 하나님'(김영진),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서의 정체성'(강동균) 과 같은 인도자들의 주제들이 더 선명해지길 기대한다.




● 이거 라이브인가봉가

      사운드와 관련해서 2012 앨범과 크게 다른 점은 잘 모르겠으나 이상하게 전작보다 현장감이 느껴진다. 2012 앨범과 몇번씩 비교하면서 들었는데, 기도트랙이나 <주님은 신실하고/주님의 그 모든 것이/주 임재 안에서> 같이 '이건 정말 라이브다!'라고 어필하는 것 같은 트랙이 없음에도 2013을 한번 돌렸을때 느낀 현장감은 분명히 2012보다 현장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왜지? 아마도 '여러분 정말로 그 사랑#$^#$^하신가요?' 같은, 도저히 후시녹음이라고 보기는 힘든 리딩멘트 때문은 아닐까...




● 트랙별 감상

01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찬송가 91장)

2009년 경에 '작곡 세미나'를 들었을 때, '예배곡의 가사가 회중 사이에서 동의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중요한 기준은 찬송가'라는 내용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어노인팅이 꾸준히 찬송가 편곡에 힘을 쏟는 것은 이런 고민과 맞닿아 있을 것 같다. 4절 가사가 '장차 일어날 예언적인 선포'이기 때문에 전조한 후에 부르는 것도 가사에 대한 고민이 전제된 편곡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있어 보인다.


또 리듬에 조금 더 변화를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무난한 리듬 편곡을 취한 것은 이어질 '예수 열방의 소망'과의 이질감을 줄이겠다는 방향성이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히려 깔끔해서 좋았다. 하지만 이 편곡 그대로 <슬픈 마음 있는 사람>만 따로 떼어서 부르기에는 조금 심심할 것 같은걸.



02 예수 열방의 소망 (Brian Doerkson 작사, 작곡)

'예수 열방의 소망'은 7집의 편곡을 거의 그대로 반복한 것이기 때문에 가사가 앞의 곡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의 후렴과 적절하게 매칭한다는 장점 외에는 따로 쓸만한 이야기가 없으니, 패쓰!

 


03 여호와께 감사하라 (최요한 작사, 작곡)

90년대 유행하던 매력적인 멜로디의 팝을 듣는 듯 말끔한 verse와 상대적으로 힘있는 후렴이 잘 조화된 것 같다. 중간부터 나오는 화음의 느낌도 참 좋다. 하지만 verse와 후렴의 가사의 어색함에 대해 얘기를 안할 수 없는데, 앞부분은 '~하라', '~하리라'의 어미로, 후렴에서는 '~합시다'로 끝나는 문장의 사용은 갑작스럽고 뜬금 없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이 노래가 '내가 스스로 나에게 선포하는 것인지',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는 것인지' 문장마다  바뀌는 어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내부적인 상의가 없지 않았을텐데, 다른 의도가 있는건지 궁금한 대목이다. 



04 모두 찬양해 (Chris Tomlin 작사, 작곡)

매트 레드맨의 <Dancing Generation>만큼 많은 팀들이 카피하지만 도저히 원곡의 (자유롭고 박진감넘치는) 느낌을 살려내지 못하는 곡이 바로, 크리스 탐린의 <Sing, Sing, Sing>이다. YWAM 캠퍼스 워십이나 120성령들에서도 카피한 바 있는 이 곡은, 원곡의 생동감과 자유로움이 커버버전에 와서 많이 반감된다. 120성령의 사람들 버전에서는 편곡에 공을 들인 흔적도 보이고 생동감도 많이 느껴지는 편인데, 예배캠프 버전은 얌전한 교회형이 부르는 느낌에 가깝다.


2절verse에서 다른 멜로디로 부르는 부분은 사실 크리스 탐린의 애드립에 가까운 멜로디라인이라고 느꼈는데, 모든 보컬이 그 멜로디로 부르니까 인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이 멜로디라인에 대한 아쉬움은 이 곡을 번안해 부른 모든 앨범에서 느끼게 된다...)



05 내 진정 사모하는 (찬송가 88장)

어노인팅 찬송가 편곡의 거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는 곡. [4마디 피아노 + 4마디 브라스를 포함한 풀밴드]의 인트로로 시작하고 [반의 반 박을 꼼꼼하게 땡겨부르는 리듬] 같은 특징은 해마다 계속해서 쌓여가는 일종의 경험치 같은 것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번에 새로 시도한 [랩]은 그닥 반가워할 일이 아니다. 원체 랩의 가사전달력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이 있어서 이 트랙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내 음악적 취향이 화성에 무게를 많이 두는 편이라 희귀한 코드진행을 보면서는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하지만, 아웃사이더 같은 랩퍼를 보면 시큰둥해하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많은 가사를 엄청나게 짧은 박자 안에 욱여넣는 식의 작법 때문에 메시지전달과 공유가 중요한 예배곡에서 가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휙휙 지나가버리는 메시지가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은 우려가 생긴다. 혹여 그 점을 고려해서 랩의 가사를 쉽게 만들어버리면 그만큼의 깊이를 포기해버리는 셈이 되는 것 같아서 랩은 아예 안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좋다고 하면 뭐 어쩔수 없지. (이 고루한 취향이여!)


물론 '물불이 두렵잖고 창검이 겁없네'같은 원곡의 가사도 바로 이해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에 랩으로 풀어내려는 시도 자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취향이 안 맞는다는 거지. 존중입니다, 취향해주시죠.



06 좋으신 하나님 (Traditional)

좋다. 백발이 성성하신 권사님들만 부르셔야할 것 같던 느릿한 노래가 자연스레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웃으며 생각해 볼 수 있는' 곡으로 바뀌었다. <내 진정...>과의 연결도 좋다.



07 채우소서 (Marcel Compan, David Cequeira & Luiz Areanjo e Davi Sacer 작사, 작곡)

남미의 숨은진주 LAMP 3집 <언약의 하나님> 수록곡. 한국어 원곡을 부른 박재욱 님의 보컬이 워낙 매력적이라 커버에 가까운 방법으로는 그 정서 이상의 무엇인가가 나오기 어려운 곡이 아니었나 싶다. 심지어 키도 한 키 낮춰 불러서 전력을 다해 갈구하는 느낌이 줄어들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든다. 원래 미드템포가 예배곡으로는 좀 애매한 것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는 마지막에 리듬을 풀고 부른 것이 흔하지만 쉽지 않은 진행이었을텐데도 참 좋다. 이 곡의 제일 강점은 후반 50초 정도에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08 주만 내 상급 (유승아 작사, 작곡)

<주님 내게 오셔서>의 뒤를 이은, 이 곡 한곡만 부른다면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곡. 아마도 <내 한 가지 소원>이나 <주님만>을 이어 부르면 괜찮을 것 같다. '존귀하신 예수 주께 속한 영광 나는 믿음으로 보네'하는 브릿지 부분이 생략된 것이 아쉽다. 그래서 조금 지루하게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이 곡의 인도자 최요한 님의 목소리는 분명 좋다. 그전 앨범들에서는 지나친 '강명식스러움' 때문에 듣기 민망한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그런 부분이 많이 다듬어져서 듣기 편하고 좋은 목소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부터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누굴 이렇다저렇다... 전국 예배인도자들의 강명식化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09 여호와 나의 목자 (김영기 작사, 작곡)

10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찬송가 456장)

유독 찬송가가 많이 실린 이번 앨범에서 편곡에 대한 고민이 제일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 트랙이다. 아마도 가사를 중심으로 두 곡을 이어서 부르기로 한 것처럼 보이는데, 3박자를 4박자로 편곡하기로 결정했어도 느리게 했으면 굉장히 처지는 느낌이었을 것이고[각주:5] 뒤의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의 템포를 따라가면 너무 빨라졌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여호와 나의 목자>를 한번 느리게 부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으로 흐름이 이어지며 점점 강해지는 편곡은 좋았으나, <주와 같이...>의 가사가 과연 그렇게 행진하는 느낌으로 소화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정서의 동의는 조금 어렵다.


 

11 온 천하 만물 우러러 (찬송가 33장)

1집의 <주 예수 이름 높이어>와 같은 송영(doxology) - 이 곡을 송영으로 보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신학적 지식은 내게 없으나, 이 글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찬양과 영광에 대한 노래'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 의 연장선이다. <주 예수 이름 높이어>가 실린 앨범이 나온지 열두해가 지났음에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일견 독립적으로 보이는 찬송가가 계시록의 말씀을 철저하게 받치면서 예배자들이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전의 성도와 모든 성도들이 훗날 하나님을 예배할 것을 예언적으로 선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장치가 이 트랙에도 있었으면 - 이를테면 시편 146편 같은 말씀을 같이 선포하는 식의 -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들어도 뭔가 빈약한 것 같아서 생각해본 것인데, 사운드도 뭔가 아쉽다. <영원하신 주> 정도의 느낌만 되어도 좋았을텐데...


 

12 아바 오셔서 (Ben Phillips Martin, Christian James 작사, 작곡)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이번 앨범에서 음악적으로 제일 구미가 당기는 곡을 꼽으라면 단연 이 곡을 꼽으리라. 뒤늦게 찾아보니 가사 번역도 원곡의 가사를 거의 놓치지 않고 잘 이뤄졌더라. consume us with Your majesty 부분을 빼고는. 원래의 가사를 보면 '당신의 영광, 위엄을 위해 우리를 사용하소서', 혹은 '당신의 영광과 위엄으로 우리를 사로잡아주십시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태운다'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의 문제는 '삶을 태운다'는 표현에 대한 이해가 '소멸하는 불'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면 자칫 잘못 이해될 수 있는 우려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컨퍼런스 2010의 <정결>이 이미 발표되었다는 것이 주효하다. 먼저 사역하고 화두를 던지는 토양에서 새로운 창의와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된다. '성령의 불은 능력의 불' 정도로만 이해되고 곡해되는 예배사역에서 잊혀지고, 알려지지 않은 개념에 대해 선행적인 인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정결>에서의 지적이 없었다면 태운다는 표현이 지금처럼 바로 납득가지 않았을 것이고,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사용하다' 정도의 단어로 번역했을 공산이 크다. 얼마나 희소성 없는 표현인가.


무엇보다 '삶을 드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 이후의 권유는 스스로를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예배의 회중 중 한명으로 생각할 회중'을 특정하고 각자의 상태를 생각해 보게하는 언급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명력 있는 탁월한 기도인도라고 생각된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리딩! 우리 안에 얼마나 무의미하고 도식화된 기도인도가 판을 치는가를 생각해보면, 이런 것은 본받을만하고 우리에게 필요하다. 17분 (CD의 1/4)에 해당하는 러닝타임을 충분히 할애할 만하다.

 


13 부흥의 세대 (Scott Brenner 작사, 작곡)

난 이 앨범을 유초등부 성경학교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잠결에 처음 들었는데, 분명 예배캠프 음반인데 다윗의장막 노래가 나와서 당황했다. 실제로 이 노래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들었는데, 스캇 브레너의 곡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편곡이나 보컬이 너무 흡사해서 당황했다.

 


14 내 모든 삶의 행동 (David Ruis 작사, 작곡)

첨바왐바의 명곡 <Tubthumping> 느낌의 원곡 편곡이 너무 강해서 그 원곡을 해칠 다른 시도는 무의미해보였던 바로 그 곡이다. 개인적으로는 첫마디의 'Every move I...'의 가사 - 영어로는 [에뷜뭅아] 정도의 4음절로 발음되는 - 를 한글로 옮기다보니 부득이하게 [내모든삶의]의 5음절로 바뀌면서 기형적인 16/16/8/8/8분음표의 급박함이 큰 부담으로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벼운 터치로 부담스럽지 않은 verse로 바꾼 수용자 친화적 편곡은 정말 감사한 대목이다. 임의로 리듬을 바꿨는데, 카피케어의 승인은 어떻게 받았는지 신기할 따름. 또 '자비와 은혜의 물결 어디서나 주 얼굴 보네'에서 갑툭튀하는 '보네'의 멜로디를 낮고 편하게 바꾼 것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후렴 이후의 '랄라라 라라랄라'하는 부분 - 이 부분을 뭐라고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스캣이라고 해야하나 - 의 단조로움을 벗어나서 종결하는 확실한 느낌을 준 것도 주효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다음에 <주 사랑 놀라와>로 이어진 목요예배의 콘티도 참 좋았다.


15 하나님의 나라 진동치 않네 (강동균 작사, 작곡)

하지만 앨범에서는 조금 뜬금없이 뜬금없는 카운터로 이어진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여러분 정말로 그 사랑 #$^#^%하신가요?'는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럴까, <내 모든 삶의 행동>과 <하나님의 나라..>의 개연성을 알기가 좀 어렵다. 굳이 이어부르지 않아도 됐을 것 같은데... 갑자기 생각난건데, 어쩌면 실제 예배에서는 다른 곡을 이어부르고, 편집의 힘으로 두 곡을 이어붙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실컷 고조한 다이나믹을 한순간에 팍 잡아먹는 식으로 굳이 이을 필요가 없잖아! 그런데 영상을 보면 이 두곡을 이어부른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 함정.


곡의 편곡은 좋다. 하행으로 내려가는 verse의 코드나, 중간에 비트를 바꾼 후렴의 코드, 심지어 그 비트변화, 중간중간 나오는 섹션조차 좋다. 무엇보다 비트를 바꿔 부른, 푸른 하늘에 걸린 새하얀 모시천이 나풀나풀거리는 느낌 (이게 무슨소리야!) 의 후렴은 참 좋다. 다만 이걸 무난하게 엔딩한 후에 불렀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 키업했다가 간주했다가 비트 바꿨다가, 다시 바꿨다가 하니까 조금 정신 없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좋다. 끝.




● 아직 갈길은 멀다

     어노인팅은 다리놓는사람들에서 독립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던 것과 같은, 아니면 어쩌면 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아니, 어쩌면 이땅에서 예배사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의 발달로 모든 팀의 콘티와 편곡이 낱낱이 공개되고, 유명설교자의 설교가 실시간 전파를 탄다. 각 지역교회의 사역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슬쩍 보고 괜찮다 싶은 것을 지역교회에서 깜짝쇼하듯이 적당히 베끼는 식의 사역으로는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예배팀들도 뭔가 새로운 음악적 시도에 지향점을 두는 식의 방향 - 물론 그런걸 위해 사역하는 팀은 없겠지만,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낄만한 전조가 우리들 안에 많이 발견되고 있음은 자명하다.


     이런 모습은 신학적, 목양적 기반이 취약한 평신도 예배인도자나 청년, 학생들에게서 더 극심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어노인팅과 같은 팀의 영향권 안에 있는 가장 큰 비율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이 '이 편곡은 왜 하는 것이고, 이 노래를 왜 이어서 부르면 좋은 것인지... 아니, 우리가 왜 노래로 예배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예배사역의 외피만 두르면서 예배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안에 차오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할 때라고 생각한다. 또 어노인팅과 같이 음악으로 예배하는 단체가 껍질이 아닌 예배의 정수 말그대로 아트오브워십Art of Worship 로 돌아가서 '여러분 우리가 예배하는 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배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할 때가 아닌지 생각해본다.


     주구장창 편곡이 어땠나, 음악이 어땠나 얘기만 써놓고선 딴소리로 매듭짓는 민망한 마무리이지만, 이 앨범이 음악으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만 예배하는 것'에 익숙한 나같은 예배자들에게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앨범으로 더 성장하기를 바란다. 또 목요예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음반으로 감상하는 음악에 갇힌 예배가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예배하고 그 예배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1. 1) <예배자의 노래>와 <베스트 셀렉션>의 다음 앨범 발매는 아직 요원해보인다. [본문으로]
  2. 2) 캠프의 모체가 대규모 집회인 '예배인도자 컨퍼런스'가 아닌, 소그룹 강의에 특화된 ‘어노인팅 예배팀 워크샵’이었다. [본문으로]
  3. 3) 흐릿한 회중 바탕에 한 사람의 원샷 레이어가 겹쳐지는 식의 디자인. 대표적인 예는 http://mall.godpeople.com/?G=1152860979-1 [본문으로]
  4. 4) 어노인팅의 1집부터 9집까지의 음원(컨퍼런스 포함)들을 인도자별로 재정렬해서 들으면 또 하나의 새로운 예배앨범을 듣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 인도자의 특색도 잘 살아있고. [본문으로]
  5. 5) 정규앨범 2집 <그크신 하나님의 사랑>의 화려한 코드편곡은 아마도 그런 점을 최대한 상쇄하려는 시도였으리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