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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생각해봤어/2015 그냥 한 생각

20150310, 선곡, 어디까지 해봤니?



     예배인도자가 예배곡을 혼자 선곡하는 건 개인의 음악적 취향이나 신앙의 색채가 공동체 예배에 독점적으로 투영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청년예배 찬양을 2년동안 인도하다가 내 취향이 지나치게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도자를 넘기기도 했었고, 곡 선곡을 같이 한다든가 인도를 부분적으로 맡아서 하는 방식이라든가 하는 것을 시도했었습니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팀원들에게 예배 때 같이 부르면 좋을 곡을 추천 받는 식으로 선곡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 같은 것은 괜찮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어떤 공감대나 배경설명 없이 곡을 추천 받으면 팀원들은 대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요즘 자주 들은 노래 같은 것을 강추하는 경향이 큽니다.


     자기 취향대로 곡을 선곡하는 것이 인도자들이라고 뭐 다를게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인도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시뮬레이션이 있는 편이죠. 이 노래는 가사가 너무 추상적이라든가, 음역이 너무 높다거나 리듬이 지나치게 어렵다거나 하는 곡에 대한 평가 같은 것들부터 시작해서 다른 곡과의 연결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팀원들의 추천곡은 (아무래도 그런 시뮬레이팅이 없다보니) 가사가 예배때 쓰기에 애매한 곡이라든가 (워킹의 기대 같은 곡들) 혼자 듣기에는 좋은데 다같이 부르기는 좀 어려운 곡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인도자들은 추천은 받아놓고 그 추천곡을 처리하지 못해 난처하고, 추천한 사람들은 기껏 추천했더니 연습조차 하지 않는 답보상태에 의욕을 상실하곤 합니다. '뭐야, 기껏 추천했더니...'


     그렇다고 선곡하는 방식을 팀원들과 공유하거나 나누고, 선곡을 공동체 단위로 하려고 하면 '그런건 인도자가 하는 것'이라며 선을 긋고 깊이 관여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부지기수. 사실 일주일 내내 두 세개, 많게는 대여섯 사역을 겹쳐서 해야 하는 지역교회 분위기 상 더 큰 의욕을 내달라고 요구하기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역머신도 아니고 말이죠.


     사역자들에게 조언을 구할 때도 있습니다. 인도자가 선곡할 때 어떤 방향으로 선곡하면 좋겠느냐고 물으면 그 주 예배 설교 본문과 제목을 틱 던져주는게 대부분이고(알아서 맞추라는 거죠), 그나마 찬양에 관심있어 하는 세심한 사역자의 경우에도 당신이 좋아하는 곡을 뽑거나, 설교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곡 하나를 문자로 보내주는게 고작입니다. (사역자 자신이 예배인도자인 경우도 있겠지만, 그럴 때는 예배 선곡과 설교를 모두 본인이 독점해버립니다. 이런 경우에는 예배의 일관성은 보장되지만, 예배 자체가 사역자 개인의 역량에 지나치게 기대게 됩니다. 몇년을 그런 방식으로 예배하다가 인도자가 독립해 떠나버리자 꽤 오랫동안 휘청했던 ㄷ팀의 경우가 그 좋은 예가 되겠죠.)


     문제는 많은 사역자들이 찬양팀보다 음악을 이용한 사역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악기는 악기대로 연주하고 부르면 되는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그래서 찬양팀을 '악보도 없이 곡명만 말하면 저절로 반주가 나오는 미가엘 반주기'처럼 여기기도 하고), 유투브 영상이나 CGN TV로만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사전준비나 연습에 대한 이해도 충분하지 않고요.


     사실 절대적인 설교중심주의의 한국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교회 차원에서 예배예술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교회는 그렇게 많지 않을테니 당연한 현상일 겁니다. (사역자들이 음악적 이해 갖춰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지금 어느 교회에서나 예배시간의 반이나 '잡아먹는' 음악을 통한 예배에 대해 무심하다는 것은 분명한 모순입니다. 찬양시간이 관심도 안 가질만큼 안 중요한 것이라면 예배 시간에서의 비중을 축소해야 하는 게 맞겠죠. 중요하다면 관심을 가지고 알아야 할 것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큰 틀을 가진 예배의 기획이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니, 예배기획은 둘째치고 찬양 선곡 역시 위기에 봉착합니다. 인도자들은 선곡하는 방법을 교회에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없거든요. 사실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고민하자고 하면 '그건 네가 잘하잖아'하는 식으로 눙칩니다. 그런 환경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롤모델은 대형집회를 갔다가 알게 된, 앨범판매고나 조회수가 핫한 유명 사역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선곡은 얼마나 유려하고, 음악은 얼마나 화려한지요. 그때부터 혼자만 행복한 비극이 시작됩니다.


     이쯤 되면 지역교회 찬양팀의 성패는 '어노인팅의 노래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 '얼마나 마커스의 화음을 잘 따라하느냐', '얼마나 온누리교회를 잘 베끼느냐' 같은, 예배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 없는, 엉뚱한 지점에서 결정됩니다. 개인의 취향을 지나치게 반영하지 않으면서도 유명팀의 색깔을 베끼지도 않는 예배 기획, 선곡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 누구나가 예배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모든 사람이 예배의 회복을 말하면서도 사실 우리는 이런 별 것 아닌 부분에서도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예배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대화 한마디 해본 적 없는 유명인들의 예배를 흉내내는게 고작인 것이죠.


     마치 신장투석기에 의존하고 있는 신장환자 같은 모습입니다. '신장이 우리 몸에서 엄청 중요하다'고 얘기하면서 신장에 안 좋은 맵고 짠 식단은 방치하는 신장환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