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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생각해봤어/2015 그냥 한 생각

20150302, 하나님 사랑 = 나라 사랑???





크리스천이니까 3.1절을 기념해야 한다고?


     3.1절은 어쩌면 크리스천들과 전혀 상관 없는 날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국가의 안위와 하나님의 뜻은 일치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오랜 식민통치와 전란에 시달린 우리 민족에게 자주국가는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이상향' 같은 것이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에게 힘들게 쟁취한 국가체제를 사랑하고 멸사봉공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준엄한 명령이다. 그런 이들에게 있어 [애국심]은 [사랑]이나 [정의] 만큼이나 보편타당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애국]과 [신앙]을 접붙이기하여 국가의 안위와 성장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이라며 엄포하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성경이 말하는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뜻이잖아


     성경은 애국심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는 내 오랜 고민의 주제 중 하나다. 성경에서 주로 말하는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대한 것이고, 그 외에는 대부분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왕국'을 지칭하는데에 한정되어 있다. 성경 어느 부분에 앗수르 민족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선지자가 나오는가, 로마 제국의 지배를 옹호하는 사도들이 나오는가 말이다. 성경이 안위하는 실제 [국가]는 이스라엘 뿐이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명확히 구분되어 가지는 특수성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혈통적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탄생하게 될 인간 예수의 핏줄이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 스스로 아브라함의 언약의 증거가 되는 민족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사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예수가 태어날 민족을 멸망하지 않게 유지시켜야 했고, 아브라함과의 오랜 언약을 지키기 위해 늘 배반하는 이스라엘을 붙들었다. 출애굽 이후와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는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켜주고 민족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은 그 언약의 성취라는 개념의 연장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뭐 대단한 민족이라서 그들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만 특권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인류 전체를 향한 구원의 상징일 따름이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벽이 허물어졌다고, 그렇게 믿고 있지 아니한가.


     보편적인 왕권과 국가체제에 대한 하나님의 시선, 성경의 관점은 어떠한가 시선을 돌려 찾아보자.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하나님이 어떤 국가나 민족과 배타적이며 독점적인 언약을 맺고 그들의 안위를 지켰다고 인정할만한 케이스는 (내 부족한 역사지식과 성경적 지식 때문인지는 몰라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성경은 세상의 군왕, 관원들과 권세자들을 줄기차게 비난한다. 하나님은 심지어 이방인도 아니고 당신이 직접 다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한 요구에 굉장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무엘상 8장에 보면 그들에게 '너희 아들과 딸들이 착취당하고, 소득을 빼앗길 것이라'며 거의 저주에 가까운 경고를 퍼붓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태극기는 결코 우상이 되지 않는 것일까


     따라서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에 있어서 나라를 사랑하거나 어떤 정치체제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유로 나는 크리스천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을 역설力說한다거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경례하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더 나아가 지나친 애국의 강조, 국민의 의무 강요는 오히려 공중권세 잡은 자에 엎드려 복종하는 심각한 문제로 변질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진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느부갓네살 신상, 즉 체제와 권력에 굽혀 절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던가. 한국교회는 일제가 신사에 참배할 것을 강압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가. 고신의 몇몇 인사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해체당한 동아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교단이 "국민의 의무"라면서 수가 얼마나 많은지 헤아리기도 힘든 일본의 온갖 잡신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던가. 생명이 없는 국기, 그리고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지 않는 인간의 체제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과연 크리스천이 자랑할만한 가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미국인들이 "God save America"를 부르듯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소리높여 부를 수 있을 염치가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일까.



크리스천에게 3.1절이 의미있는 이유는 따로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인간의 체제와 권세를 부정한다고 믿음과 동시에,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3.1절이 크리스천들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터전 위에서 각자의 형상대로, 각자의 삶을 누리도록 하였다. 아담에게 에덴을, 아브라함에게 본토를 떠난 곳에서의 삶을, 그들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했다. 거류민을 학대하지 말고, 스스로 애굽에서 거류민이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공의를 물처럼,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고 명령한다.


     조선은 일본제국의 침략적 야욕에 오랜 기간 동안 무고한 희생을 당했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자신의 삶의 터전을, 삶의 대부분의 시간과 또렷한 정신을, 재산을 대가로 치뤄야 했다. 어떤 정신나간 믿음의 소유자는 그 식민통치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경제적 탐욕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부당하게 지배하고 착취하며 고문하고 살육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허락한 삶의 모습에 배치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 억압과 압제를 뚫고 자주민으로서의 독립을 선포한 이들과 거리를 누비벼 독립을 외친 이들, 자신의 목숨과 민족의 자주를 기꺼이 바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야말로 진정 크리스천들이 본받아야 할 인간상이라고 생각한다.


     반민특위의 어이없는 와해로 청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버린 것도 모자라, 적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부를 축적하고 부당한 권력과 결탁한 덕분에 수십년이 지난 지금 사회지배체제 상당부분에서 암약하고 있는 친일잔당과 그들의 후손들에 의해 한국사회는 상당부분 감염돼버렸다. 그러한 이 시대와 사회에서 애국을 논하는 것이 과연 정말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행위이냐 하면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뒤틀려진 지배구조와 비틀려버린 민족의 자주를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려나.


     이 땅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하나님이 원하는 형상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그때가 올 때까지, 나는 태극기를 내걸지 않으련다. 감염되어버린 민족정신에 진정한 회복이 도래할 그때까지는 마음 속으로대한독립만세를 외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