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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까지는 못 되는 감상/영화광

20150428, 울트론의 시대




     에이지오브울트론을 봤다. 보고나서 들었던 질문이 있었다. 과연 어벤저스는 영웅인가?

     실컷 무기를 팔아먹으며 죽음을 팔다가 이제 제정신 차려서 그거 없앤답시고 다 폭파시켜버리는 머리좋고 돈많은 공돌이가 영웅인가? 이계에서 혼자 우두커니 와서는 오함마질이나 하거나 날아다니며 번개를 뿌려대는 반인반신이? 화가나면 모조리 때려부수는 녹색 괴물은 어떤가, 소련 첩보국에서 미국인을 골라 죽이다가 소속만 바꿔 이제는 다른 미국인을 죽이는 스파이는 어떤가 말이다.

     나는 그동안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의 작품들을 '장르로서의 [히어로물]'이라고 부르긴 했어도 그 주인공들을 영웅이라고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적인지 아군인지 알수없는 외계인과 싸운답시고 뉴욕에 있는 건물을 모조리 다 때려부수거나 정치적 반대세력을 죽이는 놈들이 과연 진짜 영웅인가 싶었던 거다.

     머리가 좋다고, 가공할만한 힘을 가졌다고, 하이테크의 장비를 다룬다고 영웅인 것은 아니다. 이들이 진짜 영웅인 이유가 전세계를 감시할만한 인공지능을 만들어서도, 하이드라 기지를 전부 습격해 폭파시켜서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어벤져스가 진짜 영웅이 되는 것은 거대한 위험 앞에서 가장 먼저 도망치며 "나는 살아남을 수 있고, 언젠가 어벤지하겠노라"고 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모든 시민들이 안전해질 때까지 나는 떠나지 않겠다"고 말할 때다.

     적과 맞서 싸우기는커녕 혼자 살아남을 생존력도 없는 아이와 목숨을 맞바꾸면서도 목숨무게를 비교형량하지 않는 의연함, 살릴 수 있는 데까지 모든 것을 해보겠다고 버티는 결기, 그리고 결국 모든 시민의 구조를 이뤄내고야마는 노력이 스크린에 비춰질때 나는 그들을 영웅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욕시민들을 전부 대피시키는데에 천문학적인 액수가 든다거나 세금이 들어간다고 징징대는 캡틴 아메리카를 상상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수트를 만들기 위해 예산이 더 필요하다고 싫은소리를 하는 아이언맨이 매력적인가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어놓고 '유감' 정도만을 표명하는 헐크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는가.

     고작 그래픽노블의 주인공들이 영웅처럼 느껴지는 현실의 밤공기가 유독 차고 유독 쓰다.

     말도 안되게 비정상적으로 뒤틀려버린 현실의 악취를 너무 오래 맡아서일까. 외계인이 이상한 무기를 휘두르고 도시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판타지가 오히려 더 정상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을 지키는 것과 죽이는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는 눈먼 권력이 다스리는 울트론의 시대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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