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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생각해봤어/예배팀과워십헬퍼

「20100926 청년찬양부흥회 곡 순서와 이야기들」


     실은 9월 26일 청년찬양부흥회가 끝나자마자 후기를 쓰려고 했다가 육체적으로 지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2주나 지나버렸다.다른 날 같았으면 그냥 포기하고 말았을 테지만 이리저리 많이 느낀 것이 있기에 끄적끄적해보련다. 이미 시간이 지난 후라 현장감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매번 수련회나 특별한 기획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는 예배에 대한 부담은 어느때나 있어왔다. 아마 그런 부담들은 평소 하는 예배에서 '애써 무시해오거나 외면했던 소통의 문제'나 '공동체적인 영적 둔감함' 같은 산적한 문제들이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저열한 사명감'과 결합되었을 때 눈에 띄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보통 이런 기획된 예배들은 주제들이 '성령'이나 '사랑' 같은 포괄적이고 원론적인 것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 주제 자체에 집중할 때 드러나는 우리의 모자란 모습이 더 도드라지는 것이리라. (그만큼 우리의 평소 예배는 얼마나 모자람 투성이인지...) 평소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경각심을 외면하고 있다가 이럴때만 유독 느끼는 나의 영적 둔감함도 그런 싸움에 일조했던 것 같다.

     간혹 '주제가 성령이면 성령 들어가는 노래 다 부르면 되잖아'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혼자 답답함을 느끼는 때도 적지 않으며, 이런 마인드를 가진 예배공동체에서 이렇게 필요 이상(보이는 정도만큼)으로 고민하는 것이 과연 나에게, 이 공동체에 유익한가 괴로워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됐는데 여전히 그런 감정과 싸워 이기는 것은 힘들다. 그 감정을 피하는 것은 더 어렵고. 

     이런 고민들을 뒤로 하고 예배의 자리에 서서 느끼는 감격은 항상 준비과정에서 흘려버리는 감정과 정신을 가득 채우고 넘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햇수로 6년여간의 예배인도 경험에서 느꼈던 모든 어려움들이 사실은 평소에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것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에서 나온다는 것, 나의 가장 큰 약점은 회중과의 소통이었음을 깨닫는 그런 예배였다, 성일 리저스 청년부의 제2회 청년찬양부흥회는. 혹은   

     
     찬양을 시작하기 전에 예닐곱 사람들에게 평소 예배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오는지 물었다. '청년찬양부흥회'라는 타이틀을 걸고 하는 예배인 이상 사람들의 마음이 평소보다는 들떠있기도 하고 나름의 더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며, 행사 같은 때에는 이상하게 세워주고 호응해줘야한다는 몹쓸 생각을 하는 오랜 악습이 유난히 신경 쓰여서,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우리의 평소의 예배인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물었던 그 질문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불받으러', '설레는 마음으로', '의무감으로 올때도', '책임감으로 올때도 있다', '천국가고 싶어서' 등등의 대답들. 모두가 좋은 대답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평소의 예배에 대한 시선을 굳히기 위해 그렇게 물었고, 우리가 예배할때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체험한 하나님 이상의 하나님을 갈망하며 오늘 더 큰 당신을 보여주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가자고 권하고 찬양을 시작했다. 우리의 의도와 마음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분께로 나아가면 한층 수월하게 예배할 수 있지 않을까.



말씀 전 찬양

찬양의 제사 드리며 D      원래는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드리며 예배를 시작하고 싶어서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를 선곡했는데 의외로 많은 지체들이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누구나 알면서도 예배의 자세를 잘 담고 있는 곡을 선곡했다. 예배준비는 한달 전부터 했는데 이 곡은 하루전에 바뀌어서 구성적으로는 거의 짠 것이 없어서 많이 어설펐고, 엔딩 같은 부분은 거의 즉흥적으로 했었다. verse부분의 리듬이 쉽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템포가 빨라서 가사가 제대로 소화가 되었는지는 의문... 
내 마음을 가득 채운 D - E     <찬양의 제사 드리며>의 마지막 부분을 '우리 모두 주님께 우리의 사랑 드리세'로 바꿔 부르고 D키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운> 후렴을 연결해서 불렀다. 그 이후에 E키의 원래 템포로 인트로. 이 곡은 사실 거의 한달에 한번은 부른 편이어서 모두 눈감고도 부를 정도여서 음악적인 장벽은 많이 낮았다. 하지만 역시 템포가 빨라서 거의 랩 수준으로 verse가사가 지나가버리는 바람에 앞부분의 고백을 조금 더 느낄 수 있도록 많이 노력했다. '주님은 나의 사랑, 삶의 중심'이라는 고백은 언제 들어도 귀하다. 그 고백이 매번 다시 고백되는 우리 청년부가 되기를. 매번 간주를 넣어서 각 부분을 연결하는 것은 수월한 편인데 회중들이 그 시간 동안 뭘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가끔씩 발생하는 것을 염려하여 간주의 멜로디를 스캇처럼 부르려고 했는데 정작 예배때는 아무것도 못했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목소리 높여서 찬양하는 모습을 보니 감사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G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컨퍼런스 버전과 <기뻐하며 경배하세> 어노인팅 9집 버전 <주님의 임재 앞에서> 컨퍼런스 버전 세 곡을 이어서 불렀다. 실은 <기뻐하며..> - <주의 친절한...> - <주님의 임재..> 순의 곡순서를 들쑥날쑥인 템포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꿨는데 여전히 템포가 다 달라서 연습할때 고생을 많이 했다. 실제로 템포 관련해서는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예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힘이나 노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나아갈 수 있게 허락해주신 친절한 팔에 안기는 것에 집중해서 불렀다.
기뻐하며 경배하세 F - G     어노인팅 9집의 편곡. 예배 당시에는 템포가 무지 빨라서 처음 겪는 지체들은 거의 패닉상태였던 것 같다. '기뻐하며 경배하세 기뻐하며 찬양하세'의 브릿지(?)는 9집 집회 당시에서도 조금 급작스러운 감이 있어서 부담스러운 것이 없지 않았는데 우리 예배에서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부분으로 작용했다. 녹음집회의 루틴이 아닌 '기뻐하며 경배하세' 이후에 '죄와 슬픔 사라지고'하는 부분을 더 불러서 엔딩을 하는 매우 복잡하고 정신없는 루틴이었기에 후반부에서는 회중들이 안드로메다로... 심지어는 그 빠른 곡에서 찬양하기 힘들었는지 기도하는 지체도 있었다. 게다가 싱어들이 정박으로 부르는 '기뻐하며 경배하세'의 애매모호한 리듬 덕에 더 이상해졌다. (...라고 말하면 이 글을 볼 누군가가 실족하려나...) 내가 계속 예배인도를 하게 된다면 몇번 더 불러서 자유한 분위기에서 부를 수 있도록 익숙해지도록 노력해볼텐데 사실 불가능하니 당분간은 청년예배때 부를 일이 없을 듯 하다. 
주님의 임재 앞에서 G     이 곡의 경우 앞의 두곡과는 템포가 현저하게 다르므로 앞 곡의 '밝은 빛을 주시네'하는 부분에서 드럼으로 카운트하는 느낌을 새로이 주어 곡의 전환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승대의 아이디어였는데, 개인적으로 멤버 개개인의 아이디어를 내서 곡을 구성하고 예배의 그림을 그리는 공동체에 대한 소망이 있는 나로서는 반가운 의견제시라고 하겠다. 능력이 뛰어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음악과 예배인도 모든 것을 리드하는 내 성향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 참여할 부분이 없진 않았나 하고 자성해본다. 내가 없는 동안 청년찬양팀이 '확고한 정체성과 방향성, 그리고 음악적 성향을 지닌 개인'이 모인 팀이 되기를. 또한 따라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엔딩후에 '주의 나라 주의 권세'하는 B verse부분을 느리게 한번 더 불렀다. 우리 삶을 억누르는 죄악과 의무감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을 물리치며, 주님의 권세와 임재를 갈망하도록 권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F - G    컨퍼런스버전 카피. 워낙 자주했기 때문에 굳이 연습하지 않아도 되는 곡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가사가 가지고 있는 무게는 분명 중요하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을 바탕으로 하는,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는 찬양의 고백이 담긴 이 곡을 선곡할 때는 조심스럽다.  익숙한 멜로디의 그 고백이 가진 무게와 가치가 소화되지 않은 채로 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신실하심에서 오는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드릴 수 있는 예배의 순간은 언제라도, 어떤 순간이라도 감격스럽다. 인트로를 변형한 G키의 엔딩 후에 느리게 후렴을 반복, 평소 담임 목사님이 바꿔 부르시는 가사처럼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성령님 인도 따라서 나 주님만 따라가리'로 바꾸어 불렀다. 이 곡을 부른 후에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고 우리 삶을 주의 소유 삼으실 것을 구하는 기도로 이어졌고, 모두 갈급함이 있었기 때문인지 깊이 예배의 자리로 들어갔던 것 같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지만 우리는 우리의 마음상태로 하나님을, 예배의 깊이를 제한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성령이 오셨네 Bb     기도한 후에 피아노 인트로로 들어갔다. <성령이 오셨네>를 부를 때마다 드는 생각은 크게 두가지이다. 처음 이 곡을 불렀을 때 (김도현 2집의 성령이 오셨네를 들은 것이 이 곡에 대한 첫경험이긴 하지만 예배 안에서 이 곡을 불렀을때의 충격과 감격은 2007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느낀 것이었다.)의 감격이 생각나서 성령 하나님을 묵상하고 간구하는 마음이 더 커져가는 것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인도자로서 이 곡을 선곡했을때의 부담감이 작용하는데 이유인즉, 우리가 늘 예배하는 것이 성령님의 임재 안에서 그 인도하심 따라 예배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자리에 성령님께서 임하고 계신다'는 의미의 '오셨네'라는 고백을 하는데에 부담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단순히 감정적으로 격앙되어서 성령님이 이곳에 계신다고 고백하는 오류, 아니면 정반대로 굉장히 무미건조하고 냉소적인 지금 상황에서 입술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둔감함에 대한 경계, 이 곡을 부를 때마다 그 경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이 늘 안타깝고 아쉽다. 찬양이 끝나고 이미 한참을 오버한 찬양시간 때문에 끊어야할 시간이었으나 울부짖으며 간구하는 회중들을 보며 한참을 더 기도했던 것 같다. 예배의 상황과는 별개로, 솔로할 때의 지회 음색은 참 좋다.


말씀 후 찬양
     말씀이 끝나고 목사님이 기도인도를 하신 후에 내가 이어받아서 기도인도를 한 후에 찬양으로 들어가는 순서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목사님이 말씀 끝나고 거의 곧바로 내게 넘기셔서 조금 당황한 상태에서 기도인도. 우리가 알고 있던 성령님 이상의 성령님을 체험하도록,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성령님은 어떠어떠한 분'이라는 선험적 인식을 뛰어넘는 있는 그대로의 성령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의 우리의 인식으로 성령님을 가둬두는 마음이 열리도록 기도했다. 회중들은 이미 마음이 열려있어서 뜨겁게 기도했다. 

내가 매일 기쁘게 G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 우리의 삶을 우리의 정욕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그분의 인도하심에 맡겨드리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순간의 고난과 어려움으로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고, 오히려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릴 수 있는 것임을 고백하고 싶어서 선곡. 이런 맥락은 앞의 <주 안에 있는 나에게>에서도 이어지는 것이다. 9집의 편곡을 좇아갔었는데, 중간의 악기 솔로 부분을 인도자와 회중이 주고받는 것으로 대체했다, 네번 정도(8마디) 반복한 후에 자유롭게 환호하고 뛸것을 권했는데, 2007년 청년예배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큰 함성과 가장 큰 기쁨의 표현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 같았다. 이렇게 차근차근 표현하고 반응하는 예배자, 공동체가 되어간다.

일어나라 주의 백성 G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은 우리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직장에서 많은 돈을 벌고, 우리의 자아가 실현되고... 하는 것들을 위해서가 아닌,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받으시고 (물론 그렇지 않으셔도 하나님은 하나님 되신다!) 이 땅의 사람들과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위해서이고, 우리 안에 방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역사를 허락하시는 것이라는 것 역시 그런 하나님의 의지를 우리 안에 투영하시는 것임을 나누고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로서 올바르게 설 것을 결단하며 불렀다. 만백성이 성령의 일하심을 통해서, 그 일하심의 도구된 우리를 통해서 기뻐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마지막 날에 G     <일어나라 주의 백성>의 연장선으로 이어진 노래였고, 성령의 임재하심을 간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 노래는 성령이라는 키워드만 나오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불려지는 노래인데 말씀으로, 또 노래하기 전에 나누는 것으로 동기부여를 하고 부르니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불리니) 그 고백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느껴져 감사했다. 마지막 Eb-F-G로 끝나는 엔딩도 자칫하면 촌스럽고 당황스러울 수 있었지만 우리 안에서 성령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환호하는 예배자들의 마음에 무사히 넘어갔던 것 같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G     하나님이 우리 안에 역사하셔야 하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모여서 노래하고 우리의 시간 일부분으로 찬양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눈을 감게 하고 스스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대양을 머릿속에 상상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바다를 가득 넘쳐 출렁이는 물처럼 이 땅 가운데 충만하게, 넘치게, 감당할 수 없을만큼 가득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자고 권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들이, 우리가 속한 이 지역, 나라, 민족, 온 우주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찬 그날을 꿈꾸며 찬양하자고 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이 이 땅 가득,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까지 퍼지도록 힘써야하는 주의 손과 발이다! 찬양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기도할 때, 우리 안에 아직 하나님의 영광, 그분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가족, 우리의 친구, 우리가 가깝게 생각하는 모든 관계의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우리의 예배가 우리 안에서 끝나고, 행사로, 좋았던 기억으로 갈무리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임을 결단할 것을 도전했다. 계속해서 기도하고 계속해서 울부짖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간구한 시간이었다.



     찬양부흥회를 주관하는 팀장에게 말씀을 전후로 찬양시간이 두번 있는데 말씀 전 40분, 말씀 후 20분 정도 인도하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실제 말씀전 찬양에는 53분, 말씀후 찬양에는 37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타임테이블로는 100분 정도의 시간이 예상되었지만 실제로는 160여분까지 늘어난 시간 동안 예배한 셈이 되었다. 좋았던 기억, 감격적이었던 순간, 내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끝없는 갈망을 남긴채 끝나버린 찬양부흥회. 찬양부흥회가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는 앞으로 내 삶의 매순간순간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너무 급마무리인가..)



여튼, 645박 646일 전도캠프 잘 다녀오겠습니다 :)